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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숙명_김주순한결문학회 2021. 2. 22. 20:37
「돼지의 숙명」
김주순(수지시니어 기자)
오랜만에 정육점에 갔다. 정육점 안에는 주인이 작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널따란 도마 위에 네다리를 쭉 뻗고 누워있는 돼지, 그러나 있어야할 머리는 없었다. 그 머리는 지금쯤 어디에서 웃고 있을까? 언젠가 개업하는 식당 앞에서 고사지낼 때 보니 돼지는 입에 오 만원 자리 돈을 물고 웃고 있었다. 죽을 때 괴로웠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웃고 죽을 수 있냐고 하니 옆에 서있던 있는 사람이 죽을 때 간질여 죽이면 웃는다고 해서 한바탕 웃은 일이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돼지머리를 삶은 후, 말랑말랑할 때 아주머니들이 웃는 모습으로 만든다고 하니 돼지가 인간을 볼 때 얼마나 얄미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은 돼지에서 쓸모없는 기름덩어리를 열심히 잘라내고 있었다. 살았을 때보다 죽었을 때 더 깨끗했다. 털은 어디서 밀고 왔는지 하얀 가죽위엔 털이 안보였다. 이렇게 사람에게 먹이 감이 되려고 꿀꿀거리며 배를 채웠을까? 잘 먹어주어 살이 많이 찐 돼지인데…….
옛날 시골에 살았을 때 일이다. 돼지장사에게 돼지를 넘겼다. 돼지는 낯선 사람을 보자, 눈치를 챘는지 공포 질린 듯 꿀꿀거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더니 가장 먼 곳인 구석으로 도망갔다. 또 어느 날인가 여러 마리 돼지 중, 도축할 것을 골랐다. 그때 걸음을 잘 못 걷는 돼지를 가리키면서 저놈을 잡아먹어야겠다고 하였다. 그 돼지는 말귀를 알아듣는 것처럼 벌떡 일어나 잘 걸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했던 생각도 났다. 돼지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돼지는 사회성이 높은 동물이란다. 그래서 돼지 한 우리에는 리더가 있는 데, 까칠한 리더를 만나면 그 우리 돼지들이 잘 자라지 않고, 많은 지장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돼지도 무서운 것도 알고 기분이 나쁜 것도 아는 데, 저 돼지도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돼지고기를 기름장에 찍어 상추와 깻잎에 싸서 먹으면 맛이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정육점을 두드렸는데, 내가 괜히 왔다는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리고 누워있는 돼지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돼지가 너무 불쌍해요 하는 말이 나왔다. 주인은 나를 힐끗 보더니 아무 말이 없다. 그는 하나의 상품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하나의 생명체로 보여 마음이 아팠다. 나는 집에 와서도 편치는 않았다. 고기로 변한 돼지를 보면서 “나는 사람이고 너는 돼지야 그건 너의 숙명이고 어쩔 수 없어” 하며 나의 불편한 마음을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건 돼지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고 고기를 먹기 위한 나의 꼼수인지도 모른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가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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