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태주/지상에서의 며칠관객과 배우 2023. 6. 4. 23:46
<필사>
지상에서의 며칠 / 나태주
때 절은 종이 창문 흐릿한 달빛 한줌이었다가
바람부는 들판의 키 큰 미루나무 잔가지 흔드는 바람이었다가
차마 소낙비일 수 있었을까? 겨우 옷자락이나 머리칼 적시는 이슬비였다가
기약없이 찾아든 바닷가 민박집 문지방까지 밀려와 칭얼대는 파도 소리였다가
누군들 안 그러랴
잠시 머물고 떠나는 지상에서의 며칠, 이런 저런 일들
좋았노라 슬펐노라 고달팠노라
그대 만나 잠시 가슴 부풀고 설렜었지
그리고는 오래고 긴 적막과 애달픔과 기다림이 거기 있었지
가는 여름 새끼손톱에 스며든 봉숭아 빠알간 물감이었다가
잘려 나간 손톱조각에 어른대는 첫눈이었다가
눈물이 고여서였을까? 눈썹 깜짝이다가 눈썹 두어 번 깜짝이다가······.
2023년5월15일, 지고 있는 할미꽃, 갑자기 찍음 '관객과 배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서고 싶은 날 (4) 2023.06.18 채인숙/여름 가고 여름_디엥 고원 외 2편 (2) 2023.06.15 가고 오고 가고 오고 (2) 2023.06.03 들길을 걸으며/나태주 (2) 2023.04.19 벚꽃은 길을 걷는다 (2) 2023.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