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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길가에 버려진 돌관객과 배우 2025. 8. 4. 21:48

「길가에 버려진 돌 」
이어령(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에서)
길가에 버려진 돌
잊혀진 돌
비가 오면 풀보다 먼저 젖는 돌
서리가 내리면 강물보다 먼저 어는 돌
바람 부는 날에는 풀도 일어서서 외치지만
나는 길가에 버려진 돌
조용히 눈 감고 입 다문 돌
가끔 나그네의 발부리에 치여
노여움과 아픔을 주는 돌
걸림돌
그러나 어느 날 나는 보았네
먼 곳에서 길손이 지나다 걸음을 멈추고
여기 귓돌이 있다 하셨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집을 지을
귀한 귓돌이 여기 있다 하셨네
그 길손이 지나고 난 뒤부터
나는 일어섰네
눈을 부릅뜨고
입 열고 일어선 돌이 되었네
아침 해가 뜰 때
제일 먼저 번쩍이는
돌
일어서 외치는 돌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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