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꽃그림자 - 이 록

갑자기여인 2011. 6. 15. 18:08

 

꽃 그림자(2)

 

 

 

                  이 록

 

 

 

꽃잎이 나는 좋다

꽃이 피지 않는 나무를 사랑하지 않는다

꽃잎이 없는 나무는 꽃 그림자가 없기 때문이다

꽃이 피고 질 때면

꽃바람으로 내려앉아

예쁜 꽃 그림자를 만든다

산수유는 개나리 그림자

벚꽃은 물방울이 겹친 무늬 그림자

쪽동백나무는 아가의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으로,

어디, 아름답지 않은 꽃이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무에 매달려 창문 활짝 열어놓은 꽃보다

조용히 떨어진 꽃잎이 만든 자리가

더 예뻐 보인다

한잎 위에 한잎

두잎 위에 두잎이

서로 엉키듯이 맞닿아

흙에 젖어

예쁜 물기가 숨어 있는

꽃나무 그림자다. 그것을

어디, 예쁘다 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늘 젖은 여유 속에서 씨앗을 틔우는

그런 꽃자리가 나는 좋다

 

 

 

 

 

 

 

 

 

2011년6월2일 쪽동백나무, 갑자기 촬영

 

 

2011년 4월 27일 벚꽃나무, 갑자기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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