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글, 그 안의 나_이원화 에세이

"봄까치꽃"_이원화 에세이 <꽃, 글, 그 안의 나>

갑자기여인 2017. 3. 12. 23:46

 

 

 

 

이원화 에세이  『꽃, 글, 그 안의 나 』중에서

      

 

봄까치꽃

 

봄, 새소리 길 위에 날고 있다.

아파트에는 까치 두어 마리가 날아다니는데, 동막천 냇가 야틈한 언덕에는 십여 마리가 떼 지어 있다. 무심히 지나치면 느끼지 못할 광경을 목격하였다. 까치들은 둥그렇게 모여 앉아 봄맞이를 하고 있다. 한몫 끼어들고 싶었다. 비탈진 언덕을 조심스레 올라갔다. 눈치 없는 나를 흘깃 보더니 낀 꼬리를 세우고 흩어졌다. 뭔가 남아 있을 것 같아 계속 올라갔다.

힘들게 오른 언덕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허리를 굽혔다. 땅바닥에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낮게 엎드렸다. 작은 꽃들이 낙엽을 제치고 손짓처럼 피어 있다. 까치들은 그들과 눈을 마주치며 봄놀이를 하고 있나 보다. 언덕 아래 산책길에도 돌계단 모퉁이에도 쇠별꽃과 함께 피어있다. 개미들의 행진 따라 몸을 굽혀야만 볼 수 있다. 이른 봄에 피는 야생화 중 제일 먼저 피는 꽃이다.

아스피린 크기랄까, 동전 100원짜리 숫자 0 크기랄까 아니면 와이셔츠 단추의 반의 반 크기로 앙증맞다. 작으면서도 꽃술과 꽃잎, 꽃받침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실 같이 가는 줄기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솜털이 있고 밑동에서 갈라져 누운 듯 퍼져 있다. 꽃빛깔은 흰 무명천에 하늘색 물감을 쏟아놓은 것 같고, 속에는 진 푸른 줄무늬가 고양이 수염같이 그려 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잘 핀다. 어리숭하면서 정이 넘치고 약은 듯 하며 순진함이 보인다. 가마솥 뚜껑을 닮아 숭늉의 맛도 나는 듯하다.

이름은 큰 개불알꽃, 열매가 달린 모습이 개의 음낭을 닮아서 붙은 일본식 이름을 그대로 번역해서 그렇게 부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봄소식을 제일 먼저 빨리 전한다하여 봄까치꽃이라 고쳐 부르고 있다. 서양에서는 새의 눈을 닮았다고 bird's eye, 우리나라에서 소당깨풀이라 부르는 지방도 있다. 봄에 금방 올라 온 잎은 나물로 먹을 수도 있고 꽃을 따서 그늘에 말려 차로 마실 수도 있다.

사람들은 빨리 걸으며 서서 봄을 맞이하려 한다. 키가 크고 화려한 꽃나무로 봄을 느끼려한다. 지위와 명예, 부를 쫓아다니는 현실보다는 봄 까치꽃처럼 눈에 잘 띄지 않고 바닥에 붙어 있는 낮은 현실도 있다. 올려다봐야만 하는 키 큰 나무보다 허리를 굽혀야만 만날 수 있는 풀꽃들도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르쳐준다. 봄까치꽃 따라 작은 꿈과 희망에게 사랑을 보낸다. 들꽃은 계속 피어날 것이고 까치들은 계속 반가운 소식 물고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