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글, 그 안의 나_이원화 에세이

이원화 에세이 <꽃, 글, 그 안의 나>_오월은

갑자기여인 2017. 4. 30. 23:45

 

『 꽃, 글, 그 안의 나』이원화 에세이

 

 

 

 

오월은

 

 

식물도 새도 인간의 마음도 솟아오른다

공원은 새벽이슬로 샤워하고 꽃가루로 화장 한다. 때죽나무꽃은 창호지를 바른 방문으로 비쳐드는 햇살의 빛깔로 흩뜨리지 않고 줄 따라 피어있다. 떨어진 꽃은 답쌓여 상크름한 향기를 흘리고 있다

마주 보고 있는 쪽동백나무꽃은 때죽나무꽃와 비슷하지만 매달려있는 꽃의 수가 다르고 이파리의 크기가 다르다. 푸르디푸른 왕벚나무 아래 오리가족은 신호위반 하며 뒤뚱거리고 사람도 따라 걷는다. 보랏빛과 노란 꽃창포가 햇빛을 안고 호수는 잔물결 지으며 숨을 죽인다. 조팝나무는 참새가 날아가는 길 따라 휘어져 있다

꽃은 하얀 레이스 성보를 머리에 쓰고 기도하는 여인의 목덜미다

호수에 비친 뾰족한 성당의 십자가는 오월의 그림자를 보게 한다. 막돌 틈의 영산홍은 사월의 화려함 잊지 않으려 떨어진 꽃잎에 이름을 남기고 오월은 서 있다. 향기 짙은 님에 취해 돌들이 있는 것도 몰랐네 바위 같은 그대와 걷던 내 마음 가슴 넓은 그대 보며 작아 졌었네, 가곡 혼자 걷는 길을 부른다. 바위틈에 오월은 잠시 머물고 있다

 

산책길 건너 높은 언덕 위 샛길로 자동차는 달리면서 누군가 기다리는 소녀의 머릿결 같은 인동덩굴을 흔든다. 오래 된 오월은 바위벽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무엇이든 반복하여 변화하다가보면 면역이 생기고 둔해지겠지만 자연에 대한 감정만큼 갈수록 예민해진다. 자연의 변화에 민감해지는 것은 세월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고독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외로울 때나 자신이 불쌍할 때 종종 나무가 우거진 숲에 자신을 풀어놓는다. 오월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계단에 작게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나무계단을 오르는 순간 청보라 빛 클레마티스가 실같이 가느다란 넝쿨에 매달려 큰 얼굴로 피어오르고 있다. 커피를 놓고 돌아서 가는 소녀 따라 오월은 길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