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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_갈치뼈 사랑관객과 배우 2018. 1. 17. 20:46
↙김점선 그림
아버지_갈치뼈 사랑
큰 오빠네 집에서 셋째 언니네로, 셋째 오빠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모두 오랜만이라 반가워 목소리 톤이 높았어요. 막내는 귓문을 활짝 열어 놓았지만, 20여년 전의 슬픔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생갈치 한마리를 다듬으며 영상 한 장면을 1950년 대 효과로 떠올렸습니다.
밤 늦게 퇴근해 오신 아버지의 저녁상, 아버지가 물리신 밥상엔 굵은 갈치 가시에 붙은 하얀 살이 남아 있었지요. 곁에 앉아 턱을 괴고 밥상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막내에게 숟가락을 넘겨 주며 미소를 띄우시던 아버지. 늘 한 술 밥과 반찬 한조각을 굳이 남기시던 분이 계셨습니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4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있는 슬픔이 아니다"라고 김훈은 말합니다.
이제는 다들 늙어서 울지 않는 걸까, 강팍한 추위 때문일까, 그 끝과 바닥이 보이지 않던 본래 시대적인 가난을 지금은 면해서 일까, 풍요러움의 죄일까
장영희는 아버지께 '20년 늦은 편지'를 썼습니다. 장영희 교수의 부친 장왕록 교수는 저의 중학시절 은사님으로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는 비밀 하나를 남겨 주신 분입니다.
"…제가 게으름 피우거나 포기할 때마다 "안 하는 것보다 늦게라도 하는 게 낫다"고 하시던 아버지 말씀을 기억하며 20년 늦게 이 편지를 띄웁니다. 아버지가 떠나신 지 6년이 되었습니다. 길다고 하면 긴 세월, 이제는 아버지의 사진 보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1주기 미사를 하면서 키스터 신부님의 강론 중에 해 주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제 보내 드립십시오. 사랑의 기억을 추억으로 남기고, 문을 닫으십시오. 아버님은 지금 천국에서 행복하십니다." 그때 저는 신부님이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위로를 해 주시기는커녕 어떻게 아버지를 보내 드리라는 말씀을 할 수 있습니까? 사랑의 기억을 어떻게 철 지난 옷 차곡차곡 챙겨 넣고 서럽장 닫아 버리듯 할 수 있나요? ……보내 드리라는 말씀은 물론 잊으라는 말씀이 아니지요. 육체적 존재에 연연하지 말고 미약한 인간적 개념의 시간을 넘어서서 더욱 깊게, 영혼의 힘으로 기억하라는 말씀이죠.
영국 작가 새뮤얼 버틀러는 '잊히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 땅에서의 이별은 한없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하늘 나라에서의 만남을 기대하는 위안을 가지게 됩니다. 삶과 죽음은 영원히 떠난 사람의 믿음과 사람의 기억 속에서 연결되어 있답니다. 남은 사람은 이 곳에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귀중히 여겨, 먼저 간 그들의 뒤를 이어 남을 사랑하고 이해해 주는 용기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이인복(李仁福)장로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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