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눈썹, 연필_홍일표<<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갑자기여인 2018. 8. 6. 00:39

 

편집장님께:

 

         아이들 키울 때는 삼복 더위를 피하기 위해, 목욕통에 물 가득 채워 놓고 들랑날랑하면서, 재미있는 책 보면서 폭염을 피하곤 했지요. 요즘 그때 그 방식으로 폭염을 이기고 싶은 때입니다. 며칠 전 저의 블로그에 올린 홍일표님의 시 <빵>을 읽고서 

 

        "빵이 예사 빵이 아닙니다. 이제 빵 먹으며 숙연해질 듯 싶습니다.
        덕분에 모처럼 시심을 들썩입니다."

 

        라는 편집장님의 공감 댓글에 추억을 떠 올려봅니다. 수십년  전 박경리소설가의 <<토지>> 10권을 빌려다가 읽으면서, 또 몇년 전  윤재천교수의 <<수필문학전집>>을 읽으면서, 올해는 홍일표시인의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를 읽으며 더위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라는 단어를 말하거나 들을 때 머릿속에 떠올리는 '시'에서 가장 먼 곳을 향해, '언어의  반대극점을 향해 날아가는 "구름의 문장'이라고, 시는 미지의 시간을 불러들여 현재의 시간을 탐구시키고, 언어 바깥의 비언어적 경험을 통해 관습화 된 언어를 해체 구성하는 행위이다."라고 고봉준 문학평론가 말하고 있습니다. 

 

 

눈썹/홍일표

 

 

눈썹은 가볍고 여린 들창 같은 것

그렇게 말하면 어디선가 혼자 비 맞고 있는

눈물방울 같은 아이

 

 

차라리 가시철조망이라고 하자

철조망의 이데올로기라고 하자

 

 

눈썹 아래 잠드는 밤바다

격랑과 해일이 잦아든 사이 낡은 구두를 덜거덕거리며 심해를 걷는 사람이 있다

어디서 온지도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우우 떼지어 몰려다니는 슬픔의 군단이 있다

어군탐지기에 잡히지 않는

글썽이는 방향이 있다

 

 

무작정 찾아든 바닷가 민박집

다 잊고 죽은 듯 잠만 잔

관 속의 사나흘

긴 눈썹 아래 오래 젖어 뒤척이던 날

 

 

해안가 가시철조망을 바다의 눈썹이라고 부르며 걷던 저녁이 있다

가늘게 흐느끼는 모래알의 아득한 울음 끝

눈물의 어깨를 감싸주던

몸안에서 돋아난 여러 올의 빗살무늬

 

 

눈썹은 때론 광물성

생의 지각을 뚫고 나온 한 마리 그리마처럼

 

 

 

연필/홍일표

 

 

묻는다

오래 숨죽여 가늘게 이어지는 검은 울음이냐고

화석처럼 단단한 눈물이 반짝이는 밤의 골목이냐고

 

 

연필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귀기울여보면

고독사라는 말이 까맣게 타고 있다

무연고 묘지 같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흰 종이 위에

혼령처럼 연필 향내가 남았다

 

 

일생이 한 가지 색으로 이어진다

푸른색도 붉은 색도 아닌

아니 모든 색을 다 삼켜버린

 

 

목관 속에 웅크리고 있던 그가 또박또박 걸어나온다

컥컥 목이 막혀 할말을 잃는

툭툭 부러져 동서남북 갈 길을 놓치기도 하는

 

 

울음 끝이 날카로운

심야를 걷는 연필심

고개 들어 창밖 먼 곳을 본다

 

 

혼자 걸어가는

밤비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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