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문학회

한결문학회 4월_수필 읽기(1)

갑자기여인 2019. 4. 23. 21:09

한결문학회 2019년 4월19일, 좋구먼에서 '수필 읽기' (1)

 

 

 

상한 수박/김문한

 

 

 

   그 날 따라 바람 한 점 없고 무더웠다. 그래도 내일 강의를 위해 교재를 준비하고 있는데 현관 벨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손에 수박을 들고 있는 이 군이 서있었다. 내 강의를 열심히 듣고, 또 성적도 우수한 학생이 아닌가. 반가워 들어오라 해도 아닙니다 하며 내 손에 수박을 넘겨주고 급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 군은 가난한 학생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수박을 사오다니. 아마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샀을 것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정년퇴임하고서도 내가 받은 은혜를 세상을 위해 보답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나는 교수출신이라 가르치는 일이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변과학기술대학*이 가난한 조선족 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을 시켜 기술을 가르치고 신앙심도 심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보수였지만 나는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였으며 이곳에 와서 조선족 학생들에게 건설경영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연변의 생활수준은 우리나라 60년대와 같았다. 가난한 부모님들은 자식만은 대학에 보내어 교육시켜야 한다며 국내외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감수하고 있었다. 이런 배경이 나의 마음에 더욱 강한 사명감을 갖게 했다. 내 강의를 듣는 학생마다 훌륭한 기술자가 되어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결심하고 하는 내 강의가 학생들에게는 한밤중의 서광처럼 느꼈는지 모른다. 여하튼 내 강의를 듣고 있는 이 군이 수박을 사온 것이다.

   나는 집사람에게 이 군 이야기를 했고, 빨리 수박을 먹자고 하였다. 집사람의 얼굴에도 웃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수박에 칼을 대자마자 썩은 수박육질이 한꺼번에 방바닥에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고약한 냄새가 방안 가득히 진동하였다. 곯은 수박을 사오다니, 불쾌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집사람 보기도 민망하였다.

   그러나 그 괘씸한 생각은 아침 해가 뜨자 살아져가는 안개와 같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갔다. 안개가 사라지자 내 발아래 피어있던 아름다운 들꽃이 보였던 것처럼 나에게 상한 수박을 가져온 이 군이 내 앞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지 가난한 이 군이 수박을 사본 적이 있었겠나? 수박을 고르는 법을 알았겠나? 오직 기뻐할 내 얼굴만 보였을 것이다. 속아서 수박을 샀을망정 나를 찾아오는 동안은 얼마나 행복했을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드니 나를 존경하고 신뢰하는 이 군의 따뜻한 정이 오히려 고마웠다.

   다음 날 학교에서 이 군을 만나 어제 사온 수박은 내가 먹어본 중 제일 맛이 있었다고 했다. 이 군은 좀 더 큰 것을 샀어야 하는데 하며 쑥스러워하면서도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그 후에 착하고 성실한 이 군과 더 친밀하게 됐고, 때로는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군은 해외유학시험에 합격되었으며, 졸업 후 우리나라 S대학교에 유학을 갔다. 그러나 실력 차로 낙심하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어느 날 이 군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교수님 6개월 정도는 코피를 흘렸는데 지금은 다른 학생들과 보조를 잘 맞추고 있으니 걱정 마십이요 라는 내용이었다. 이 군은 배우고자 하는 집념이 강했기에 기어이 학부에서의 부족한 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군은 석사과정을 마치고 어렵다는 삼성건설회사 입사시험에 당당이 합격되어 지금은 삼성맨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업무역량이 인정되어 다른 입사동기보다 1년 빨리 과장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가난한 학생이, 세상물정 몰랐던 학생이 이제는 떳떳한 기술자로서 험난한 인생길을 힘 있게 걸어가는 이 군을 생각할 때마다 이런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만일 그 때 내가 상한 수박이 아니고 신선한 수박을 받았더라면 이웃의 착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옹졸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 아닌가?

   무더운 여름철 잘 익은 수박을 먹는 것 얼마나 시원한 일인가? 잘 냉장된 수박을 먹을 때 땀을 식혀주는 상쾌한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는 그 보다도 정이 담긴 수박, 눈물이 담긴 수박, 아름다운 마음이 담긴 수박만큼 맛있는 수박은 없을 것이라 믿고 있다.

 

연변과학기술대학 : 중국 길림성(간도) 연길시에 있는 대학

 

 

 

 

 

나의 소확행(小確幸)/홍승숙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에게는 언제 어느 때 얼마만큼의 행복이 있었을까? 최근 행복의 속성이나 행복의 비결 등 행복의 가치가 재발견되는 시대다.

   10월 중순부터 3개월 가까운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이래 시차적응이 안 되어 밤 2~3시면 눈을 뜬다. 인체리듬은 참으로 묘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 현상은 일주일째 계속이다.

눈을 뜨면 자연히 삶의 소리를 내게 된다. 옛날 며느리와 함께 사는 시대였다면 밤잠을 안자고 덜그럭 거리는 시어머니가 얼마나 싫었을까? 나이 들어 그 달콤하던 새벽잠이 없어지니 옛 시절이 생각난다. 이즈음은 첫새벽이든 오밤중이든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 참으로 행복하다.

   한 밤중에 일어나 떠나온 그곳 남편 있는 곳의 시간을 본다. 오전 6시나 7시, 기상시간이다. 색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친구들은 부러워한다. 과연 그 시간이 내게 얼마큼 행복한 시간이었을까?

그간 우리 세대는 양적성장의 경쟁에 치우쳐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왔다. 행복의 이성적 면보다 본능적면에 더 관심을 두는 편이었다. 이제는 자아를 인식하고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시대다.

요즈음 새로운 말 중에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다. 작지만 확실히 행복한 삶을 뜻하는 말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의 수필집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소소하면서도 나 스스로가 행복한 작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삶을 뜻한다.

   ‘인생은 한 번뿐' 이라는 전제하에 나만의 아주 작은 일에 열중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삶으로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특징을 내포한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도 늦은 나이에 연구교수로 외로이 힘든 고생을 택했을 것이다.

돌아보니 그간의 나의 삶은 분명 다른 사람과는 다른 삶이었다. 타고나지 못한 재능에 대한 열등감, 받쳐주지 못하는 환경에 대한 원망과 더불어 힘겹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이러한 필요와 욕구가 기적의 어머니가 되어 오늘의 내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동안 갈고 닦으며 살아온 세월 가운데 미처 느끼지 못한 행복이 삶의 순간마다 요소요소에 스며있었던 것을 깨닫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을까.

   미국에서의 생활을 추억해 본다. 그곳에서 5개월 만에 만나는 남편의 모습은 훨씬 자신감 있고 활기차 보였다. 그곳에서 혼자 연구하는 삶이 행복한 모양이었다. 그의 행복을 따라 나도 행복을 누려보리라 다짐하며 미국생활을 시작 했다. 가까이 도서관에서 오래된 한국 책들을 빌려 읽으면서도 흥미가 없었다. 아파트 지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남편을 위해 시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며 알아듣지 못하는 방송이지만 TV에서 특정프로그램이나 명화를 보았다. 오붓하고 호젓한 시간을 마음껏 누린 것이다. 한가로운 낮 시간에는 거리를 산책하고 전철을 타고 다니며 미국 문화를 배우고, 마트에 들려 각가지 상품 구경을 하면서 색다른 경험을 쌓으려고 애썼다.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으로 삼으려고 노력했으나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조율하지 않은 피아노의 음색처럼 어설프고 따분했다. 사람은 함께 하모니를 이루어야 하는 사회적 동물임을 절감했다.

   마침 그동안 그와 교류했던 많은 지인들, 원로교수, 후배교수, 교회친구 등 만나는 사람이 차츰 생기게 되었다. 외국에서 만나는 동포는 모두 귀인이라는데 정말 그렇다. 길게 교류한 시간이 없었지만 매우 반갑고 따뜻한 마음으로 금방 친밀해진다. 많은 이의 초대를 받고 함께 나들이 하면서 새로운 정을 쌓다 보니 이국에서의 새로운 행복감을 느끼며 감사의 마음이 샘솟았다.

   현실적으로 그곳의 원룸 아파트의 임시 거처는 장난감 살림이었다. 베일로 가려진 가랑비처럼 시늉만 갖춘 어설픈 살림이었다. 귀국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대궐같이 넓고 시원하고 풍족한 나의 집에 고마움과 애정이 새롭게 느껴질 정도다. 미국의 초라하기 그지없는 생활공간에서 고생을 사서 하는 남편이 가끔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있을까, 남편 나름의 소확행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겉보기엔 불편해 보여도 도를 닦는 자세로 여전히 그곳 생활을 즐기고 있는 그가 부럽다.

   시시때때 양적인 추구에 집중하다 보면 행복을 찾기가 매우 힘이 든다. 그러나 자아성취와 질적인 성장을 위해 새로움을 추구하다 보면 확실히 행복을 느끼게 된다. 나도 이즈음엔 책 한 권을 읽는 일, 영화 한 편 보는 일, 정다운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일,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일, 함께 먹는 일, 맑은 날씨에 꽃구경, 적당한 운동으로 몸을 풀면서 기분이 나른해 지는 행복, 이 모두가 소확행을 찾아 누리는 방법이다. 앞으로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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