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글, 그 안의 나_이원화 에세이

이원화에세이<꽃, 글, 그 안의 나>_김장철 코 앞에서

갑자기여인 2019. 9. 11. 07:28

『꽃, 글, 그 안의 나』

 이원화 에세이

 

 

 

 김장철 코 앞에서

 

 

   큰 나무 아래서 살고 있는 맥문동 집은 잿빛으로 쓸쓸하다. 가을이 오고 있다.

   신문은 송편 이야기부터 명절 귀성길까지 지면에 싣고 있다. 송편 하면 먼저 시어머니가 떠오른다. 결혼한 해의 추석 전날, 시어머니의 설명을 들으며 떡 반죽을 하였다.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씀에 얼굴 붉히며 열심히 따라 했다. 이튿날 며느리로서 큰일을 한 듯 대문으로 들어서는데, 어머님이 뛰어 나오시면서 부엌 뒷문으로 나를 데리고 가신다. 검지를 입에 대고 다른 손으로 대바구니를 가리키신다. 동글동글한 송편은 하나도 없고 뒤죽박죽 엉켜 있는 것들만 보였다. 당황해 하는 며느리의 손을 잡고 미소 지으며 대바구니를 치우셨다.

 

   빨랫줄의 옷은 바람 따라 신이 났다. 시멘트바닥에 널려 있는 고추도 붉게 치장하려 몸을 뒤척인다. 김장하는 날, 시어머니의 말씀 따라서 재료를 다듬었다. 크기를 정해 주시면 그대로 썰고, 항아리도 조심해서 닦았다. 새색시는 어머니의 만류도 뿌리치고 도우미도 제쳐두고 무, 파, 마늘, 고춧가루, 젓갈, 생강 등을 넣고 버무리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내 손에 참기름을 발라 주셨다. 신나게 버무린 양념을 절인 배추 켜켜이 넣어 김장을 끝냈다. 집에 돌아와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손잔등이 부어오르기 시작한다. 남편의 전화를 받고 달려오신 어머니는 멘소리담을 발라주었으나 별 효과는 없었다. 고추와 마늘의 매운 독이 올라 화끈화끈 불을 지르는 듯하였다. 어머니는 밤새 며느리 손을 찬물에 담갔다가 뺐다 하면서 돌보아주셨다. 울듯 눈에 눈물을 참고 있는 며느리를 쳐다보는 어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보였다. 결혼 직전까지 직장생활 하면서 살림살이를 전혀 모르는 7남매의 막내딸로 자란, 둘째 며느리를 늘 감싸주고 덮어 주며 가르쳐 주셨다.

   아름다운 가을이 가고 있다. 나도 두 며느리의 시어미 자리에 있다. 시대가 바뀌어 며느리와 같이 김장을 담그고 송편을 빚는 생활은 점점 사라져 간다. 간편하게 사다 먹으며 바쁜 세상을 쉽게 지내고 있다. 가족 간에 따뜻함, 아픔, 슬픔, 애틋함, 같은 깊은 정을 느낄 수가 없다. 이젠 새로운 가정문화를 만들어야겠다. 그냥 바라다보면서, 그냥 쉽고도 편히, 그냥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만이 최상이라 생각하던 마음을 바꾸어, 조금은 피해도 주고 상처는 아니더라도 서로가 부딪치면서 서로 아파하고 서로 위로하며 따뜻함을 키워야겠다. 추석이 코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