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 6

봄과 함께 걷는다

마스크를 쓰고 무작정 걷기로 했다. 그 동안 무릎에 이상이 생겨서 마음 놓고 걷지를 못했는데 3월 막바지, 봄 물든 버드나무와 냇물에 비친 버드나무가 서로 자기가 진짜라고 우겨도 그 대답은 할 수가 없을 정도, 한컷 찍고 구미교까지 걸었더니 발바닥은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다. 조심스레 되돌아서 재건축하는 아파트 틈길로 걷는데, 그 담벽에 느티나무와 산수유 꽃이 속삭이고 있다. 큰 기쁨을 안고 봄과 함께 그냥 걷는다.

수필은 시도다 2024.03.25

산수유에게/정호승

산수유에게/정호승 늙어가는 아버지를 용서하라 너는 봄이 오지 않아도 꽃으로 피어나지만 나는 봄이 와도 꽃으로 피어나지 않는다 봄이 가도 꽃잎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내 평생 꽃으로 피어나는 사람을 아름다워했으나 이제는 사람이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 사람이 꽃처럼 열매 맺길 바라지 않는다 늙어간다고 사랑을 잃겠느냐 늙어간다고 사랑도 늙겠느냐 ↑ 2024년 3월 오후,구미공원에서

관객과 배우 2024.03.18

봄까치꽃과 호랑나비

"힘들게 오른 언덕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허리를 굽혔다. 땅바닥에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낮게 엎드렸다. 작은 꽃들이 낙엽을 제치고 손짓처럼 피어 있다. 호랑나비와 눈을 마주하며 봄놀이를 하고 있었나 보다. 언덕 아래 산책길에도 돌계단 모퉁이에도 쇠별꽃과 함께 피어있다. 개미들의 행진 따라 몸을 굽혀야만 볼 수 있다. 이른 봄에 피는 야생화 중 제일 먼저 피는 꽃이다. " 이원화 에세이 《꽃, 글, 그 안의 나 》 에서

관객과 배우 2024.03.18

햇살의 집/이재훈

햇살의 집 햇살이 술을 마신다. 거리는 방금 목욕을 한 것처럼 뽀 얗다. 나는 버스 안에 앉아 술에 취해 이글거리는 햇살을 본다. 한 소녀가 버스에 오르며 묻는다. 이 버스는 천국 으로 가나요? 햇살이 일그러지고 사람들이 비틀거린다.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 동상이 흠 칫 움직인다. 칼자루를 놓고 싶다. 후손들아! 꽃잎이 비 틀거리며 이글거리는 햇살 속으로 날아간다. 차창 밖으 로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사람들이 와 좋아한다. 나도 꽃 잎이 되고 싶어요! 아가씨가 황급히 벨을 누른다. 햇살은 집이 없다. 사방 어디를 가도 햇살이 누워 있다. 나는 집 없는 햇살이 시큼한 솔내를 풍기며 창가로 살짝 몸을 기 대는 것을 보았다. 잠이 온다. 저 햇살에 집을 주고 같이 무너져내리고 싶다. 이..

관객과 배우 2024.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