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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한/신문지 외 1편한결문학회 2023. 2. 16. 20:35
신문지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신문 많은 소식 들고 와 신문지가 된다 방모서리에 있는 신문지 정리하다, 나도 이제 신문지라는 생각 쓸쓸해지는데 버려진 신문지 아직 할 일 많다 한다 분수가 있는 세상살이 삶의 길에 순응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 지난날의 흔적은 추억일 뿐, 고집하지 말자 포장이 되고 받침이 되는 것 신문지가 할 수 있는 기쁜 일 아니겠나 겨울에 내리던 봄비 오늘도 전선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고 많은 전사자가 생겼다는 방송 어쩐지 심란하다 중부전선으로 가는 도중 소식 전해 듣고 달려 나온 사촌형 수심 가득한 얼굴 나를 만나자마자 장하다 ‘문한’아 소리 내어 덥석 내 손잡더니 장갑이 없구나 동상 걸리면 안 된다 끼고 있던 낡은 가죽장갑 내 손에 끼워주고 손목 만지더니 시계도 없네 싸움터에서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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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식 전령사 봄까치꽃관객과 배우 2023. 2. 14. 16:41
". . . . . 아스피린 크기랄까, 동전 100원짜리 숫자 0 크기랄까 아니면 와이셔츠 단추의 반의 반 크기로 앙증맞다. 작으면서도 꽃술과 꽃잎, 꽃받침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실 같이 가는 줄기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솜털이 있고 밑동에서 갈라져 누은 듯 퍼져 있다. 꽃받침은 흰 무명천에 하늘색 물감을 쏟아놓은 것 같고 속에는 진 푸른 줄무늬가 고양이 수염 같이 그려 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잘 핀다. 어리숭하면서 정이 넘치고 약은 듯하며 순진함이 보인다 가마솥 뚜껑을 닮아 숭늉의 맛도 나는 듯 하다 이름은 큰 개불알꽃, 열매가 달린 모습이 개의 음낭을 닮아서 붙은 일본식 이름을 그대로 번역해서 그렇게 부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봄소식을 제일 먼저 빨리 전한다하여 봄까치꽃이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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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_정호승관객과 배우 2023. 2. 11. 00:30
택배 슬픔이 택배로 왔다 누가 보냈는 지 모른다 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 서둘러 슬픔의 박스와 포장지를 벗긴다 벗겨도 벗겨도 슬픔은 나오지 않는다 누가 보낸 슬픔의 제품이길래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이길래 사랑을 잃고 두 눈이 멀어 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나에게 배송돼 왔나 포장된 슬픔은 나를 슬프게 한다 살아갈 날보다 죽어갈 날이 더 많은 나에게 택배로 온 슬픔이여 슬픔의 포장지를 스스로 벗고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나에게만은 슬픔의 진실된 얼굴을 보여다오 마지막 한방울 눈물이 남을 때까지 얼어붙은 슬픔을 택배로 보내고 누가 저 눈길 위에서 울고 있는지 그를 찾아 눈길을 걸어가야 한다 정호승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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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육이 자보 꽃이 피고 질 때관객과 배우 2023. 2. 6. 20:46
다육이 자보(백합과 Gasteria 속, 원산지는 남아프리카 남부) 화분 1개를 2021년 7월 15일에 조카로 부터 선물 받았습니다 선물로 받은 자보는 아롱아롱한 무늬가 고르게 있으면서 무심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기는 별로 크지 않은 데 화분의 높이가 높아서 발런스가 맞지 않은 듯 보였지만 그냥저냥 다른 화분들과 함께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조카는 자보를 키운 경험이 있어, 키가 큰 화분을 선택하였더라고요 자보는 시간이 흘러도 무심한 표정으로 곁에 번식만 하더니 18개월이 지난 2023년 1월13일에 제일 큰 잎 사이에서 싹이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곡선으로 꽃대가 길게 자라며 산호색과 연두색 그리고 미색의 꽃봉오리가 망울망울 맺히기 시작하였습니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르던 꽃봉오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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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겨울 모습들관객과 배우 2023. 1. 29. 16:26
상상 못했던 한파가 계속되는 날씨 속에서도 따뜻한 겨울 모습이 보이네요 잠깐 멈춰 서서 난방비와 온수의 폭탄도 잠시 잊고 냇물에 몸을 씻으며 즐거워하는 꽁지가 긴 까치들을 봐요 "까닥 까닥 푸르르 까아깍.. . " 2023년 1월 22일 용인시죽전2동 탄천에서 갑자기가 찍음 비둘기떼가 비상하네 여행도 못가는데 비둘기 따라 날아가 보자 강가에서 물 살 바라보고 있으면 그리움 어떻게 오는 지 알 수 있다 잠겼다 고개 들고 잠겼다 고개 드는 물여울처럼 그리움 그렇게 다가옴을 볼 수 있다. (유경환 유고시집 「강가에서」 ) 구미교 아래에서 물닭 한 쌍이 행복한 겨울을 즐기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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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_추위에 바치는 노래관객과 배우 2023. 1. 26. 21:30
「추위에 바치는 노래」_이어령 어머니 아무래도 당신께서 덮어주신 이 이불만으로는 바이칼호의 추위 만주벌판의 추위 유별난 알래스카의 그 추위를 견디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건 가난의 추위이고 혼자 있는 추위이고 전쟁의 추위입니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덥혀주신 구들장만으로는 천년 동안의 추위를 참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좀더 따뜻한 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의 겨울 이야기처럼 처마 끝에서 밤새 소리 없이 얼다가 눈부신 아침 햇빛처럼 매달리는 그런 고드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개구리 도마뱀 땅속에 묻힌 파충류의 꿈 허들링으로 벽을 만들어 눈보라를 막는 펭귄들의 사랑 세마리 개와 겨울을 자는 호주의 원주민들 아닙니다 어머니 지금 어느 눈 골짜기에 핀 매화를 찾아 집을 나섰다는 할아버지의 그 지팡이가 필요하답니다 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