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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됨됨이/박경리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후함으로 하여 삶이 풍성해지고 인색함으로 하여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생명들은 어쨌거나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 그렇게 아니하는 존재는 길가에 굴러 있는 한낱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메마르고 보잘것없는 인생을 더러 보아 왔다 심성이 후하여 넉넉하고 생기에 찬 인생도 더러 보아 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 인색한 사람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관객과 배우 2023.08.01

매미 손님

*참매미: "맴-맴-맴-맴-매애앰-"반복해 울다가 마지막에 음을 높혀서 "매애↗(10여초 동안 유지)...애애애..."하며 마무리 짓는다. *말매미(왕매미): "쐐~~애애애애에~" *애매미: "르르르르르르르르르-츠-와이치-르르르르르와아치- *쓰름매미: "쓰-름 쓰-름" 에서 옮겨 온 한국 서식종 매미들의 울음소리 일부분입니다. 비는 또 다음날에 내리고 앞 창문에 둘, 뒷 창문에 또 둘, 꽃방 창문에 하나, 마치 야외 카페에 모인 듯, 모두 배 흔들며 연미복 날개를 흔듭니다. 자바섬에서 도착한 마라 무테 커피를 내려 그 향을 맡게 하고 싶습니다 소나기 속 맑은 아침 앞 베란다 창문에 손님 하나, 반가워 가까이 다가 서니 울음소리 뒤쪽에서 크게 들려옵니다 놀란 뒷베란다 창문의 손님 둘, 매암맴 서로서로 소리..

관객과 배우 2023.07.18

행동하라, 살아 있는 현재 속에서

장영희 영미시산책 《 축복》 「인생찬가」 헨리 왜즈워스 롱펠로 슬픈 가락으로 내게 말하지 말라 인생은 단지 허망한 꿈일 뿐이라고! 삶은 환상이 아니다! 무덤이 삶의 목적지는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행복해 보인들 '미래'를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죽은 이들이나 파묻게 하라! 행동하라, 살아 있는 현재 속에서 행동하라! 그러니 이제 우리 일어나 무엇이든 하자 그 어떤 운명과도 맞설 용기를 가지고 언제나 성취하고 추구하며 일하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자 살다보면 살아가는 일도 타성이 되어버립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많이 겪다보면 익숙해져서 그저 그런가 보다. 그냥 이렇게 살다 떠나지, 별 생각 없이 사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우레 소리 같습니다. 무력감과 권태에 빠져 잠들어버린 영혼을 깨우는 소리입니다. (·..

관객과 배우 2023.07.17

달팽이와 백석의 <수라>

아파트에 수요일마다 야채차가 옵니다 뚱하지만 밉지 않은 아줌마 사장님과 '새로운 게 뭐 있어요?' 하며 인사를 나누었지요 사장님은 상자를 열더니 나물을 들어 올렸습니다. 처음 보는 부지깽이나물이라 자세히 보는데, 시든 잎에 달팽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거 제주도 애월읍에서 온 것이어여 허허' '나에게 주세요'하며 검정 봉투 속에 그걸 넣었지요 그렇게 해서 제주도산 달팽이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아침마다 달팽이가 사는 플라스틱 통을 씻고 김치냉장고에 둔 부지깽이나물 몇 잎을 바꿔 넣어주었지요 다음날 통을 들여보니 검정 털실 오라기를 물에 불린 것 같은 똥도 보였습니다 며칠 후 부지깽이나물이 다 떨어져 우리가 먹는 상추를 넣어줬더니 신이 나서 먹습니다 왕성하게 상춧잎을 먹고 슬슬 기어 다니더니 그만 똥을. ᄏ..

관객과 배우 2023.07.08

나태주/다시 9월이

「다시 9월이」 나태주 기다리라, 오래오래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지루하지만 더욱 이제 치유의 계절이 찾아온다 상처받은 짐승들도 제 혀로 상처를 핥아 아픔을 잊게 되리라 가을 과일들은 봉지 안에서 살이 오르고 눈이 밝고 다리 굵은 아이들은 멀리까지 갔다가 서둘러 돌아오리라 구름 높이, 높이 떴다 하늘 한 가슴에 새하얀 궁전이 솟았다 이제 제각기 가야할 길로 가야할 시간 기다리라, 더욱 오래오래 그리고 많이.

관객과 배우 2023.07.03

한국근현대미술전 다시 보다 _ 보다

소마 미술관 2023. 4. 6 -------8.27 1. 우리땅, 민족의 노래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 이인성 구본웅 박생광 2. 디아스포라, 민족사의 여백 배운성 이쾌대 변월룡 황용엽 3. 여성, 또 하나의 미술사 나혜석 이성자 방혜자 최욱경 천경자 박래현 4.추상, 세계화의 도전과 성취 김환기 유영국 한묵 남관 이응노 5, 조각, 시대를 빚고 깎고 김종명 권진규 김정숙 문신

관객과 배우 2023.06.29

나서고 싶은 날

문선생에게 무작정 집을 나서고 싶어지는 때,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사건사고도 있었지만. 나를 수목원으로 초대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우 흐린 날씨에 소나기도 맞고 소나기 피하러 처진올벚나무 둥치 안에서 사진도 찍고 따뜻한 문선생의 마음이 얼마나 내 가슴을 뭉쿨하게 하던 지 내편이 없다고 투정하던 늙은이에게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될 줄은 미쳐 몰랐다우 5월의 싱그러운 숲 속에서 가막살나무꽃, 이나무, 참빗살나무, 처진올벚나무, 무늬백합나무꽃 등 새로운 식물들을 보면서 새로운 친구를 갖게 되어 흥미롭고 즐거웠다우 행복이란 꽃말을 가진 크로바 꽃반지를 만들어 내 손에 끼워준 문선생은 십여년 전에 이어진 인연으로 다시 또 만나고 싶은 한 사람, 바로 행복이라우.

관객과 배우 2023.06.18

채인숙/여름 가고 여름_디엥 고원 외 2편

《여름 가고 여름》 채인숙 시집, 민음사 채인숙 1971년 경남 통영군 사량도에서 태어나 삼천포에서 성장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했다. 2015년 오장환신인문학사에 「1945년, 그리운 바타비야」 외 5편의 시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디엥 고원 」 열대에 찬 바람이 분다 가장 단순한 기도를 바치기 위해 맨발의 여자들이 회색의 화산재를 밟으며 사라진 사원을 오른다 한 여자가 산꼭대기에 닿을 때마다 새로운 태양이 한 개씩 태어난다 무릎이 없는 영혼들이 사라진 사원 옆에서 에델바이스로 핀다 몇 생을 거쳐 기척도 없이 피어난다 땅의 뜨거움과 하늘의 차가움을 견디며 천 년을 끓어오르는 화산 속으로 여자들이 꽃을 던진다 어둠의 고원을 거니는 만삭의 바람이 여자들의 맨발을 어루만진다 똑같은 계절이 오고 또 ..

관객과 배우 2023.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