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문학회

탐매행/이원화

갑자기여인 2012. 2. 20. 21:50

 

  탐매행 

 

                                                                                    이 원 화 <좋은 문학>수필등단, 한결문학회 동인

                                                                                                                          

  탐매행(探梅行)을 떠나고 싶습니다.

세상이 온통 차가운 기운과 싸늘한 눈 속에 싸여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습니다. 이런 때 옛 선비들이 즐겼던 탐매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고고한 선비로 자처하던 옛 선비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화가 핀 것을 가능한 빨리 보고 싶어 눈길 속을 헤매고 다녔답니다. 심매(尋梅) 또는 탐매행이란 시인이나 묵객들이 봄이 아직 오지 않는 겨울에 매화나무의 꽃과 향기를 찾아 산과 들로 다니는 풍류적인 행사라고 합니다. 그들은 어째서 꽃을 찾아 나서는 걸까요.

  옛 그림에서 보면 눈 속에 꽃을 찾아 나귀를 타고 가는 장면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곁에는 동자가 깔 자리와 다기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뒤를 따릅니다. 보기에도 삶의 높은 품격을 갖춘 멋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친구와 더불어 갓 피기 시작한 매화나무 아래 자리를 펴고, 맑은 찻잔에 매화꽃을 띄워 차를 마시는 풍경만 보아도, 또 다른 향기로운 경치를 상상하게 하게 합니다. 그 옛날 매화를 사랑하는 어떤 사람은 꽃철이 되면 이부자리를 가지고 꽃을 찾아가 꽃망울이 잔뜩 부풀어 오를 때부터 마침내 꽃이 만발하고 질 때까지 그 꽃그늘 아래서 먹고 자며 지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옛부터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여러 가지 화목들을 9개의 품계로 나누었습니다. 선비들은 매화를 가장 사랑하였답니다. 그러한 매화는 강희안이 쓴 ⟪양화소록⟫의 <화목구품>에서 솔⦁ 대⦁ 연⦁ 국화와 함께 1품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화암수록⟫의 <화목구등품제>에서도 똑같이 1등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화품이란 꽃이 가진 품격과 운치에 따라서 미감을 몇 가지로 구분한 것으로 옛날 우리 조상들이 꽃에 부여했던 의미나 감정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화품이 일등인 매화는 찬 서리와 쌓인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초목이 눈을 감고 얼어 붙어있을 때 추위를 무릅쓰고 홀로 피어납니다. 봄이 올 것을 다른 꽃보다 제일 먼저 알려줍니다. 매화는 만물이 냉기에 젖어 있을 때 봄의 문턱에서 꽃을 피움으로써 사람들에게 삶의 의욕과 희망을 주며 생명력을 재생시켜줍니다. 썩어서 죽은 것 같이 보이는 말라붙고 비틀어진 늙은 가지에서 잎보다 먼저 꽃을 피워 새로운 생명이 되살아납니다. 매화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또 하나의 매력은 그 향기가 맑고 그윽하여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온갖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 꽃을 피운 정성이 가득 담겨있는 것입니다.

  매화의 이런 매력으로 옛날부터 선비들은 매화의 시를 읊고 매화 그리기를 즐겼으며, 매화문이 새겨진 문방을 사용하고, 뜰에 매화를 심어 군자의 덕성을 배우고자 노력하며 자신과 동일시하여 선비정신을 키웠다고 합니다. 얼어붙은 땅 속에 뿌리를 뻗고 눈보라 속에서 꽃을 피우며 불의에 굴하지 않는 강인하고 고결한 기품의 모습은 선비의 곧은 지조로 비유되고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았습니다.

  ⟪나무백과⟫(임경빈 저)는 “매화나무는 돈만 많은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나무라 했다. 그들은 돈 버는 궁리만 하느라 인간성이 제대로 높은 곳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매화는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매화나무는 은둔하는 선비와 낙향하는 선비를 위한 나무로 보는 것이 옳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도시의 나무라기보다는 시골의 나무이고 젊은이보다는 명상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성숙한 인간들에게 더 어울리는 나무”라고 했습니다.

  매화의 절개를 상징하는 말로 흔히 "매화는 가난하여도 일생동안 그 향기를 돈과 바꾸지 않는다(梅花一生寒不賣香)"라는 말도 있습니다. 조선 세조 때의 성삼문은 단종에 대한 마음을 눈 속에 피는 매화와 대나무의 절개를 더하여 충신의 의지를 상징하여 자신의 호를 매죽헌(梅竹軒)이라고 지은 것은 우리가 다 아는 것입니다.

 

 

매화의 풍격은 본디 풍진을 떨치고서

말랐어도 어렵사리 진실함을 지녔네

철석같은 간장에 바위 골짝 모습 지녀

빙설에도 꿈쩍 않는 정신을 볼 수 있네

김인후의<매봉(梅峯)>,《하서선생전집》

 

 

   선비들은 매화의 곧고 맑은 성품을 노래한 글을 지어 일편단심으로 사모하는 임에게 자신의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고자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 저는 옛 선비같이 매화꽃을 띄어 매화차를 마실 수 없지만, 작년에 담근 매실즙으로 차 한 잔 만들어 백자 찻잔에 마십니다. 맑고 깨끗한 여운이 퍼져 작은 입의 공간을 신비의 묘미로 가득 채워 줍니다. 맛은 새콤하고 싱겁지 않습니다.

 

 

  이제는 탐매행을 멈추려고 합니다

이렇듯 옛날부터 선비들은 한파에 시달려도 굽히지 않고, 얼어붙은 눈 속에도 이겨내는 매화의 맑고 강인한 성품을 사랑하였습니다. 자신의 고결한 심성을 기르고 올곧은 기상을 다지며 선비정신을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선비들은 매화를 노래함으로써 자기의 정신과 의지를 그 속에 투영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진실을 지키려는 다짐을 하였던 것입니다. 매화는 보기 싫을 정도의 고목일수록 더 운치가 있고, 더 맑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그윽한 향기를 피웁니다. 그것은 불굴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얼음과 눈보라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의연한 정신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고매하고 너그러운 도덕적 품성을 쌓고 있는 선비들이 즐기고 사랑하는 그런 품격의 매화를 감히 찾아 나서겠다는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짧은 지식과 연륜을 가지고 그 깊고 깊은 심상에 미치지 못함을 자인하면서, 탐매행을 이제 그만두려고 합니다.

 

(좋은文學 2012_통권 제58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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