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노천명의 푸른 오월

갑자기여인 2016. 5. 6. 02:28

푸른 오월

 

                                     노천명(1912~1957)



청자(靑瓷)빛 하늘이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잎에
여인네 행주치마에
첫 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같이 앉는 정오(正午)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왠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것을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진 길을 걸으면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 냄새가 물씬
향수보다도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에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홋잎나물 젓갈나물 참나물 고사리를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구나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아니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