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이우환 화백의 <싸악싸악>

갑자기여인 2016. 5. 19. 02:27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시가 많다. 마음을 녹여주는 아름다운 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시,

좋은 시가 읽고 싶다.

 

아랫시는 이우환 화백의 소년 시절에 쓴 시다. 그의 어린 시절의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우환 시집 『멈춰 서서』제 6부 소년(1952~1956)

 

싸악싸악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서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쌀을 씻고 있던 어머니

 

콧노래 흥얼거리며 새 울음리와 함께

할아버지의 호통치는 소리 속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싸악싸악

 

언제나 쌀만 씻고 있어

같은 일만 하는 게 뭐가 재미있어 물으면

저 나무가 매일 똑같아 보이느냐고 되물으며

어린 나를 바라보았다

 

산도 계곡도 없는 큰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빵을 베어 물며 책을 읽는 나날들

 

까닭도 없이 짜증스러워져

홀로 담배에 불을 붙이면

연기 속에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고

어디선가 싸악싸악

 

창밖을 바라보면

오늘도 거기에 서 있는 나무는 새롭고

조용히 웃음이 피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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