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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틀하니 친한 사람과 슴슴한 국수 한 사발
    관객과 배우 2020. 7. 12. 15:21

    살틀하니 친한 친구들과

    수수하고 슴슴한 국수 한 사발 그득히 담아놓고

    은근히 흥성흥성,

    주말 보내요

     

     

    백석의 「국수」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 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 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텀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느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 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 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에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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