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 20

수복강녕 壽福康寧 하세요

수복강녕부귀 壽福康寧富貴 2022년 임인년 설에 가족들의 나이를 새삼스레 확인하니 자식들은 50대 손주들은 20대였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인데도 생생하고 놀라웠습니다. 질문을 하네요. 자신들을 제외한 또 다른 50여년을 함께 한 "것이 있느냐?"고, 50년이란 퍽 긴 세월이죠 그동안 별로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귀하게 가지고 있는 우리집의 가보 6쪽 병풍 가 떠올랐습니다. 50여년 전에 수를 직접 놓은 일생일대의 물건이죠. 옆집에 살고 있는 E대 자수과를 졸업한 새댁에게 코치를 받은 것입니다. 첫 글자 목숨 수(壽) 문(紋)을 자세히 보세요. 흉터가 보이죠. 새댁은 엉망이 된 무늬를 다 뜯어내고 수정도 해주었습니다. 본뜨기, 명주실구입하기, 마지막에는 인사동 표구까지 해 주었습니다. 2022년 설날 모든..

수필은 시도다 2022.01.30

새처럼 용수철처럼 일요일처럼_유희경

담벼락에 기대 선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모자를 한 사람은 달력을 닮았다 그들은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손이 움직인다 새처럼 용수철처럼 일요일처럼 손목에 걸린 우산처럼 그들의 대화는 흔들리고, 들리지 않는다 새처럼 용수철처럼 일요일처럼 모자를 닮은 한 사람이 달력을 닮은 다른 사람을 넘겨보지만 그것은 그냥 人間에 대한 질문 그러나, 달력의 뒷면이 모자에 닿을 때 그것은 퍽 쓸쓸한 풍경이다 때마침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 일 년이 몇 장 남지 않은 장면에서 놀라는 우리처럼 담벼락에 기대 선 두 사람은 대화를 멈춘다 우산을 펼쳐 든 사람들처럼 손을 꼭 잡는다 새처럼 용수철처럼 지나갈버릴 일요일처럼 이상하지 않게 새처럼 용수철처럼 일요일처럼 유희경 시집_《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

관객과 배우 2022.01.27

이영광 _<졸업장 -안동 찜닭 생각>

졸업장 ㅡ안동 찜닭 생각 학력고사를 두어 주 앞두고 내가 또 칵 죽고 싶어져/학교 안 가고 술 취해 드러누워 있을 때,/벼 타작하던 아버지가 찜닭을 들고 자취방엘 왔다/삼부자가 그 놈의 학교 졸업장 하나 못 받으면 무슨 망신이냐고,/이거 먹고 내일은 꼭 가라고 맛있는 거라고//살림 잘 들어먹고 공납금 잘 안 주던/이상한 아버지가 보기 싫어서/나는 말없이 그걸 먹으며, 찜닭이 맞나 닭찜이 맞나/소주나 한잔 더 했으면 좋겠네,/생각하고 있었다 공부도 연애도 안 되어 그만,/집이고 학교고 뭐고 멀리멀리 탈출해버리고 싶던/시인 지망생, 하지만 찜닭에 누그러진 열아홉/ 아버지 경운기 몰고 육십 리 길 돌아가자/ 포기했던 단원을 다시 펼쳤다//안동고등학교 일 학년 중퇴생 아버지는 십 년째 고향 앞산에 누웠고/이 학..

관객과 배우 2022.01.21

날아라 피어라! 용주야

"날아라 용주야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저 눈부신 푸른 하늘을 향하여 언젠가 반겨줄 너의 보금자리를 위해 푸르른 저 산을 넘어 눈부신 하늘을 향하여 용주야 날아라" 할미는 노래 부른다. 어느 시인이 지은 가곡의 가사를 바꾼 것이다. 우리에게 없는 세계를 향해 날마다 피어라! 자신이 하고 싶고, 해서 즐거운 기쁨을 창조해라. 청년으로서 맡은 바 모든 것, 유학생활을 졸업하고 군복무도 끝내고서 부모가 있는 집으로 향하는 너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이 너의 마음이나 육체에 늘 함께 하기를 할미는 무릎 끓고 기도한다. 용주야 축복날개를 달고 어디든지 날아라!

가족이야기 2022.01.19

안도현_ 일월의 서한(書翰)

안도현의 「일월의 서한(書翰)」 어제 저녁 영하 이십도의 혹한을 도끼로 찍어 처마 끝에 걸어 두었소 꾸덕꾸덕하게 마를 때쯤 와서 화롯불에 구워 먹읍시다 구부러지지 않고 요동 없는 아침 공기가 심히 꼿꼿한 수염 같소 당신이 오는 길을 내려고 쌓인 눈을 넉가래로 밀고 적설량을 재보았더니 세 뼘 반이 조금 넘었소 간밤에 저 앞산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가 숨깨나 찼을 것이오 좁쌀 한 줌 마당에 뿌려놓았으니 당신이 기르는 붉은 가슴딱새 몇 마리 먼저 이리로 날려 보내주시오 또 기별 전하리다, 총총 ( 안도현 시집_《북항》에서)

관객과 배우 2022.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