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배우 786

최영미_<시(詩)>

「시(詩)」_최영미 나는 내 시에서 돈 냄새가 나면 좋겠다 빳빳한 수표가 아니라 손때 꼬깃한 지폐 청소부 아저씨의 땀에 절은 남방 호주머니로 비치는 깻잎 같은 만 원 한 장의 푸르름 나는 내 시에서 간직하면 좋겠다 퇴근길의 뻑적지근한 매연 가루, 기름칠한 피로 새벽 1시 병원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시 반지하 연립의 스탠드 켠 한숨처럼 하늘로 오르지도 땅으로 꺼지지도 못해 그래서 그만큼 더 아찔하게 버티고 서 있는 하느님, 부처님 썩지도 않을 고상한 이름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책갈피가 아니라 지친 몸에서 몸으로 거듭나는 아픈 입에서 입으로 깊어지는 노래 절간 뒷간의 면박한 허무가 아니라 지하철 광고 카피의 한 문장으로 뚝 떨어지는 슴슴한 고독이 아니라 사람사는 밑구녁 후미진 골목마다 범벅한 사연을 끌어안고 ..

관객과 배우 2022.06.23

어떻게 이렇게

*얼마 전까지 구미교 아래에 탄천과 동막천 상류로 부터 흘러내린 토사가 퇴적되어 이루어진 아름다운 섬? 하중도가 있었다. 인위적으로 제거가 된 듯, 물결은 잔잔하지만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하천의 폭을 넓히기 위해 퇴적물을 없앤 이유는 알겠으나, 흐르는 강물 사이의 자연숲, 물고기가 새끼를 낳고 왜가리나 청둥오리가 낮잠 자는 곳, 수생식물의 보금자리를 빼앗은 듯, 자연의 경치를 강제 철거 당한 모습이다. * 사진은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달라진 탄천 모습을 스마트폰의 '파노라마'를 선택해서 오른 쪽에 있는 남편으로 부터 왼쪽으로 천천히 옮기며 촬영하였다. 사진을 확인해 보다가 깜짝 놀랐다. 남편의 모습이 왼쪽에도 있지 않은가? 어쩌다 이렇게. 파노라마로 촬영 할 때 오른편의 인물이 왼편으로 자리를 옮기면..

관객과 배우 2022.06.10

'내가 제일 잘 나가' - 숙제 이야기

변성진 (사진작가, F64대표)선생님의 '포토 에세이' 7주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숙제 ↙ 제출. ↗ 사진은 동막천이 흐르는 낙생교 언덕에서 찍은 것입니다. 그곳을 4차례나 갔습니다. 점점 사라져 가는 이름도 잊혀진 나무 그루터기와 바람에 굴러 온 설익은 살구열매, 화려한 돌나물꽃에 엑센트 주며 사진의 스토리를 생각했습니다. 오늘 수강생들의 사진 숙제를 서로 교환해 각자의 시선과 현장에서 구성한 짧은 글을 공유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제 그림에 이렇게 썼습니다. "고목이 된 그루터기에 봄꽃 야생화가 찾아왔다. 덩달아 살구, 푸른 열매도 왔다. 내 삶의 기쁨도 찾아오겠지" 라고. 참 올드합니다. 선생님은 저의 숙제를 보고 그 핵심과 균형을 잡아주고 윗트 있는 글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었습니다..

관객과 배우 2022.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