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글, 그 안의 나_이원화 에세이 27

이원화 에세이 <꽃, 글, 그 안의 나>_오줌싸개

오줌싸개 *오줌싸개가 정승 판서 되다 그림책 『오줌싸개가 정승 판서 되었다네』를 읽으니 할머니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린다. 얘들아 오줌 누고 자거라. 오줌을 가리지 못하거나 어쩌다가 실수로 오줌을 지리는 아이를 오줌싸개, 의학적으로는 야뇨증이라 한다. 사라진 옛 풍습으로 오줌을 가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잠자리에서 오줌을 싼 아이에게는 다음 날 아침에 머리에 키를 씌우고 쪽박을 들려서 이웃집으로 소금 동냥을 보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아이가 키를 쓴 것만 보고도 이유를 알기 때문에 쪽박에 소금을 퍼 준다. 부지깽이나 부엌 빗자루로 키를 두드리며 다시는 오줌을 싸지 말라고 혼쭐을 낸다. 아이는 호되게 놀라고 창피해서 스스로 조심하여 오줌을 가렸다. 키를 쓴 경험이 있던 아이는 는 속담에 일찍 눈을 떠서 정승 ..

부끄러운 약식

약식은 아이들이 한창 성장할 때 빼고는 직접 집에서 만들어 먹지 않는다 주재료인 찹쌀은 하루 전에 미리 물에 담가 놓고, 밤 껍질을 베끼고 대추는 돌려 썰어 손질을 한다 전기밥솥에 불린 찹쌀에 황설탕, 간장, 소금 약간을 넣어 앉혔다 삼십 여분 지나 완성된 약식을 먹어보니 찹쌀이 그대로 있다 전기밥솥이라 뜸이 들지 않아서일까, 빨리 다른 냄비에 쏟아 물을 약간 뿌리고 뜸을 들였다 또 한 번 뜸을 들였다. 이젠 됐다싶어 먹어보니 푹 익지 않아 살캉살캉하다 간은 아주 달짝지근하고. 분명히 당도를 알맞게 했는데도 달다. 맛을 더하기 위해 대추를 많이 넣었나보다 남편은 단 음식을 싫어한다 혹시나 하여 남편에게 맛을 보라고 했다 보나마나 냄새가 좋지 않다면서, 곱지 않는 시선으로 갖다버리라고까지 한다 기가 죽어 ..

유월 이야기

*발리_여백의 섬 발리는 신의 섬, 여백의 섬이 아닐까. 여백이란 자기와 타자와의 만남에 의해 열리는 앙양된 공간이라고 이우환화백은 말했다. 여백은 그저 빈 공간이 아니라 거기에는 무언가 리얼리티와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큰 북을 치면 소리가 주위 공간에 울려 퍼지게 된다. 큰 북을 포함한 이 바이브레이션의 공간을 여백이라 말했다. 인도양을 배경으로 순간마다 바뀌는 변화의 아름다움, 햇빛과 바람과 구름, 바다와 하늘 또 별 그리고 절벽과 해안, 늘 푸른 숲과 사계절의 꽃, 이들의 만남에서 열리는 공간은 바로 섬의 여백, 축복 받은 여백에 다시 초대를 받았다. *사미사미(Sami Sami) 발리의 데파사공항에 도착했다. 3년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전보다 훨씬 세련되고 정리정돈 되었다. 비행장 출구..

이원화에세이<꽃, 글, 그 안의 나>_김장철 코 앞에서

『꽃, 글, 그 안의 나』 이원화 에세이 김장철 코 앞에서 큰 나무 아래서 살고 있는 맥문동 집은 잿빛으로 쓸쓸하다. 가을이 오고 있다. 신문은 송편 이야기부터 명절 귀성길까지 지면에 싣고 있다. 송편 하면 먼저 시어머니가 떠오른다. 결혼한 해의 추석 전날, 시어머니의 설명을 들으며 ..

이원화에세이<꽃, 글, 그 안의 나>_아까 그 사람

『꽃, 글, 그 안의 나』 이원화 에세이 ↓ 작품:이원화(2011년) 아까 그 사람 한참동안 지하철 자리에 앉아 읽었습니다. 저만 앉아서 가는 것이 미안해 앞에 서서 가는 분께 자리를 양보했더니, 괜찮다고 하면서 그냥 앉아서 읽으라는 표정을 주었습니다. 지하철은 계속 달리고 있었습니다. ..

이원화 에세이 <꽃, 글, 그 안의 나>_레미제라블과 용주

운정회꽃꽂이작품집 '......94" 에서 이원화 에세이 『꽃, 글, 그 안의 나』중에서 레미제라블과 용주 둥글게 둥글게, 차가운 눈꽃은 잘 뭉쳐지지 않지만 열심히 또 하나를 만들어요. 주목 잎으로 양쪽 눈썹을 붙이고 낙엽 한 개로 입을 만들고. 할머니 빨간색 털장갑을 막대기에 끼워 한 손..